만성피로 증후군
생리적 탈진을 넘어선 복합적 고통의 실체
만성피로증후군(CFS)은 아직까지 미국 정신의학회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진단은 아니지만, 1988년 미국 CDC에서 진단된 기준에는 휴식으로 회복되지 않는 극심한 피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과, 일상생활에 현저한 제한을 초래한다는 것이 있다. 피로는 단지 몸이 무거운 느낌을 넘어, 인지 기능 저하, 수면장애, 근육통, 기립 불내성 등 다양한 신체·정신 증상을 동반한다.
CFS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PEM(Post-Exertional Malaise), 즉 ‘노력 후 악화’다. 이는 단순한 운동이나 정신적 활동 이후, 통상적인 범위 이상의 피로가 수시간에서 수일간 지속되는 현상이다. 일반인의 회복 메커니즘과 달리, CFS 환자는 작은 자극에도 신경·면역계가 과도하게 반응하며 기능이 급격히 저하된다.
현재까지 CFS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면역계의 이상 반응, 자가면역적 요소, 중추신경계의 염증성 반응, 호르몬 불균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관점이 유력하다. 특히 최근 연구에서는 CFS 환자에게서 신경면역계의 지속적인 저등급 염증과 대사 기능의 비정상적인 에너지 생산 패턴이 관찰되고 있다. 즉, 몸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기본 구조 자체가 손상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많은 환자들이 특정 바이러스 감염(예: EBV, HHV-6) 후에 증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감염 후 발병 패턴 역시 주요 단서로 여겨진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발생하는 '롱코비드(Long COVID)'와의 연관성 속에서도 주목받고 있으며, 두 질환은 임상 양상에서 상당한 중첩을 보인다.
심리적인 요인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과거처럼 이를 ‘심리적 문제의 산물’로 치부하는 것은 위험한 단순화다. 오히려 심리적 스트레스가 신체 시스템에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즉 정신신체의 이중 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불균형이나 수면장애, 감정 조절의 어려움은 모두 신체 에너지 시스템에 직접적인 부담을 준다.
진단은 주로 배제에 의존한다. 즉, 갑상선 질환, 빈혈, 자가면역질환, 우울증 등 다른 질환을 배제한 후 국제기준(예: IOM 진단기준)에 따라 진단이 내려진다. 이는 CFS의 불확실성과 의료적 사각지대를 반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치료 역시 난관이 많다. 아직까지 CFS를 완치하는 치료법은 없으며, 증상 중심의 관리가 주가 된다. 에너지 조절 전략인 '페이싱(pacing)'이 핵심이다. 이는 신체 활동량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악화를 피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에너지 한계선’을 인지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더불어 인지행동치료(CBT), 수면 개선, 항우울제나 진통제의 제한적 사용이 병행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질환이 환자의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 때문이 아님을 사회가 인식하는 것이다. 만성피로증후군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이며, 그들의 고통은 실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질환을 단순한 피로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신체·심리·사회적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